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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득 |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본부장
오는 17일 의료연대본부 산하 서울대병원, 경북대병원, 강원대병원, 충북대병원 노동조합이 동시에 파업에 돌입한다. 핵심 요구는 ‘붕괴 위기 공공의료·지역의료 살리기’다.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인한 상처와 고통이 아직 해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가 “지역 격차 해소” “공공의료 강화”를 이미 국정과제에 포함했는데도,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이 같은 의제로 파업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대로 있으면 의료대란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의료기관은 민간병원 95%와 공공병원 5%로 구성되어 있다. 감염병 대유행 시기에도 국민의 필요에 따라 병상을 운용할 수 없었던 이유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지역의료 붕괴 모두 ‘국민의 필요’가 아닌 ‘병원 자본의 영업이익을 위한 의료 제공’으로 생긴 문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민의 필요에 맞춰 의료체계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영국의 국영의료서비스(NHS)처럼 공공의료, 계획 의료로 전환해야 가능하다. 그것이 당장 어렵다면 보완책은 공공병원을 주축으로 하되, 95%의 민간병원을 이용해 국가의료체계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겠지만) 비슷하게 운영하는 것이다.
대구 지역을 예로 들어보자. 상급종합병원은 경북대병원(중구), 계명대동산병원(달서구), 영남대병원(남구), 대구가톨릭대병원(남구), 칠곡경북대병원(북구) 등 다섯 곳이다. 그러나 이들 병원을 총괄하는 단위는 없다. 지방정부의 역할이지만 역량도, 의지도, 제도도 충분치 않다. 의료 공백을 해결하려면 지역 전체의 의료 수요를 예측하고, 공급 계획을 세우고, 자원을 운용해야 한다. 국립대병원의 공공성과 정책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동의하지만, 국립대병원이 아니면 누가 그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지역 완결형 의료체계를 구축하고, 한국 의료의 위기를 극복할 동력은 국립대병원에 있다. 국립대병원이 지방정부와 함께 지역의료의 정책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경북대병원이 동산병원, 영남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과는 차별화되는 다른 역할을 맡아야 한다. 4개 병원을 총괄하고 조정하고 협력하면서, 지금까지 말뿐이었던 ‘권역 책임 의료기관’이 아닌, 대구 지역 전체 의료를 정말로 책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적 지위와 재정 지원, 새로운 권한과 역할을 부여하는 정부 정책이 있어야 한다.
국립대병원 스스로도 달라져야 한다. 국립대병원장들이 천금같이 여기는 설립 목적인 ‘교육, 연구, 진료’는 사립대병원도 수행하고 있다. 이제 국립대병원은 환자를 돈벌이 대상으로, 병원 노동자를 돈벌이 기계로 만드는 재벌, 민간병원과의 경쟁에서 빠져나와 시장 의료의 중단을 선언하고 민간병원과는 완전히 다른 병원이 되어야 한다. 국가 의료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의료 공공성 강화로 신뢰와 정의를 갖추고, 정책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해 공공의료의 선봉 역할을 자임할 수 있어야 한다.
국립대병원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공동 파업의 요구는 △공공의료와 공공돌봄 확대 △병원·돌봄 노동자 인력 충원과 노동조건 개선 △어린이부터 전 국민 무상의료 실현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 전면 시행으로 간병비 문제 해결 △의료 민영화 시도 중단 등이다. 이 요구는 정부의 국정 과제에 빠져 있는 부분을 채우고, 지역과 사업장 울타리를 넘어서 환자와 노동자 모두를 살리는 요구다.
지금까지 의료연대본부는 국정기획위원회와 정부에 요구안 전달, 국립대병원 노동자 서명, 각 병원 교섭, 복지부·교육부와 면담·협의 등을 진행하였다. 파업 돌입 전까지 정부와 합의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부가 노동자들의 절실한 요구에 답하기 바란다. 병원 돌봄 노동자들이 모두의 건강권을 지킬 수 있도록 시민 여러분의 응원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