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본부장 박경득)가 17일 파업에 돌입한다. 4개 국립대병원과 서울대병원 식당 비정규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는다. 본부에 따르면 4곳 이상 국립대병원의 공동파업은 2004년 주 5일 근무제 도입을 위한 파업 이후 21년 만이다. 이들은 지금이야말로 공공·지역의료를 바로잡을 적기라고 강조한다. 코로나19와 전공의 의료거부가 누적하며 공공의료현장이 고사 직전에 이르렀다는 진단이다.
본부에 따르면 지난 한 해 11개 국립대병원의 적자는 5천639억원에 달한다. 감염병 전담병원과 전공의 이탈로 환자들은 민간병원으로 떠났고,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국립대병원은 기업의 자본 총합이 자본금보다 적어진 자본잠식에 빠졌다. 위기의 공공의료를 소생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매일노동뉴스>가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의료연대본부 사무실에서 파업을 앞둔 박경득(44·사진) 본부장을 만났다.
“공공·지역의료 살리겠다던 정부, 세부계획도 예산도 없다”
- 국립대병원으로서는 20여년 만에 대규모 공동파업이다.
“국립대병원 노동자는 공공기관 직원이다. 공공의료기관 구성원이 파업하게 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정부가 하겠다는 국정과제 때문이다. 정부는 공공의료 강화·지역의료 격차 해소 등을 약속했는데,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것 같아서다.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은 의료대란의 근본 원인이 공공의료 부재 때문이라고 체감한다. 이걸 바꿔야 하는데 마침 의지를 가진 정부가 나타났다. 그런데 정부 국정과제는 사기나 다름없다. 목표를 달성할 세부계획도, 예산도 없다. 공공·지역의료를 살리려면 대표적 공공병원인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근데 병원조차 정부 정책을 협력하고 집행할 의지나 역량이 없다. 이 상황을 계속 모른척하면 환자 생명은 더욱 위험해진다. 조합원들은 코로나19와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가속화한 의료재난을 지켜만 볼지, 새 정부에서 제대로 공공·지역의료를 만들지 싸울 것이냐 중에 후자를 택한 거다.”
- 본부 요구는 무엇인가.
“사실 코로나19나 전공의 이탈 전부터 한국 의료재난은 심각했다. 병원의 95% 이상이 민간인 나라에서 환자들은 지역에서 필요한 진료를 받지 못했다. 환자의 의료필요도에 따라 의료가 공급되지 않고 이익이 나는 의료만을 공급해 왔다.
민간의료 비율이 이렇게 높으면 국가의료나 계획의료가 실행될 수 있나. 지역과 공공의료를 지역 국립대병원이나 국가가 구축하는 체계를 만들라는 거다. 대구·경북지역을 예로 들면 이렇다. 경북에는 5개 상급종합병원이 있다. 그럼 경북대병원(분원인 칠곡경북대병원 포함)은 대구시·경북도와 함께 의료수요를 예측하고, 필요 자원에 대한 공급계획을 세워 다른 민간 상급종합병원과 함께 일을 배분해야 한다. 다른 병원이 경북대병원에 협력하도록 법적 지위도 보장해야 한다. 그러려면 경북대병원이 의료정책 역량을 갖춰야 한다. 다른 병원들과 수익 경쟁에 매몰되지 않게 예산지원도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민간대학병원은 보건복지부가 관리하고, 국립대병원은 교육부가 관리한다. 주무부처가 나눠져 있으니 대화가 안 된다. 본부는 국립대병원도 복지부로 이관하자고 이야기하는데 일부 국립대병원장들은 공공연하게 반대의사를 내비친다. 명분은 교육·연구기능이 약화할까 우려된다지만 실상은 복지부 관리·감독을 받고싶지 않아서다. 물론 이관은 목표가 아니라 방법이다. 이관 이후 지역의료 총괄체계를 국립대병원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정부도 국정과제에 복지부 이관을 포함했는데, 정부 예산안을 살펴보니 이관 이후 체계를 위한 예산이 배정돼 있지 않았다. 정부 약속이 말잔치로 느껴지는 이유다.”
“국립대병원, 지역의료 책임기관 되도록 재정지원해야”
- 부처 이관뿐 아니라 재정지원이 병행해야 한다는 건가.
“강원대·충북대병원은 적자가 누적돼 자본잠식 수준이다. 경북대병원의 1년 적자는 1천100억원에 육박한다. 지금은 재정문제를 해결하려고 더욱 더 영리적으로 병원을 운영할 것이냐, 아니면 민간 경쟁체제에서 벗어나 공공·지역의료를 책임지는 공공기관으로 탈바꿈할거냐 기로에 서있다. 의료연대본부는 후자를 주장하고, 정부가 국립대병원을 살릴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본다. 재정지원은 공공의료에 제대로 쓰여야 한다. 정부가 국립대병원에 재정을 지원하되 이게 공공·지역의료 책무를 다하기 위해 쓰이는지 감시하고, 공공성평가도 해야 한다. 지역의료 책임기관으로서 역할을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어떤가.
“강원대병원 조합원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국립대병원인데 좋은 일자리까지는 못 돼도 노동조건·임금이 사립대 수준에도 못 미쳐 인력을 뺏겨야 하는 현실이 참 슬프다’고 말하더라. 병원 바로 앞에 사립대인 한림대병원이 있다. 창문으로 보일 정도다. 이렇다 보니 한림대병원 쪽으로 인력이 많이 이동한다더라. 강원대병원은 신규 채용도 정원을 못 채우고 있다. 강원대병원은 국립대병원이지만 강원지역 상급종합병원이 아니다. 새 정부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줄 알았는데 병원과 정부의 의지가 부족하다고들 이야기한다.
서울대병원도 사정이 비슷하다. 정부가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을 추진하면서 중증환자비율이 높아졌는데 인력은 그대로다. 그래서 인력충원을 요구한다. 또 근속할수록 임금이 매우 낮아 임금체계 개편도 요구한다. 대폭 인상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임금이 다른 국립대병원 평균만큼이라도 돼 숙련인력 유출을 막자는 거다. 서울대병원은 신규 1년차 임금은 다른 병원보다 높지만 근속할수록 임금이 낮아진다.
병원으로서는 숙련인력이 나가도 신규인력을 뽑으면 되니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 노동자들을 하찮게 본다. 숙련인력은 의료 질을 보장한다. 환자들도 경력이 긴 의료진에게 진료받고 싶지 않을까.
충북대병원은 2023년 연구동을 신설해 인력을 뽑아야 하는데 기재부 정원 승인이 없어 비정규직으로 채용해 왔다. 강원대는 정원이 있어도 처우가 안 좋아 신규 채용도 미달한다.”

“공공의료, 신뢰와 정의 갖춘 질 좋은 의료로 거듭나야”
- 정부는 국립대병원에 총인건비를 해제하겠다고 한다.
“사립대는 환자에게 받는 의료비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는 지원금으로 직원 임금 인상 재원을 마련한다. 그런데 공공병원은 정부 정책에 따라 (수요가 낮아도 필수 진료과에) 병상을 배정하다보니 지원금보다 적자가 커 이익을 내지 못한다. 그리고 총인건비·총정원제에 묶여있어 임금 인상률도 제한받는다. 육아휴직급여가 올라도 정해진 인상률 안에서 집행해야 한다. 수당을 늘리는 대신 근속자들 임금 인상률을 낮추다 보니 숙련자들이 유출되고 의료 질이 떨어진다.
공공병원이 값싸고 저질의료를 제공하는 인식이 생겨서는 안 되지 않나. 이런 인식을 정부가 바꿔야 한다. 공공의료는 시민들이 믿고 찾는, 신뢰와 정의를 갖춘 의료여야 한다.
다만 이는 공공기관 해제 주장과는 다르다. 경영평가를 피하기 위해 공공기관을 해제해 달라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는 공공기관 정체성을 빼자는 요구는 하지 않았다.
본부는 궁극적으로 모든 의료를 공공에서 제공해야 한다고 본다. 당장은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지만 이행하기 위해 의료권역별로 국립대병원에 공공·지역의료를 책임지는 역할을 주자는 거다. 국립대병원을 통해 민간병원 역할을 조정해 보자는 주장이다. 시장의료제도에 기반해도 운영을 공공처럼 하면 된다. 국립대병원에게 국민들이 보내는 신뢰가 여전히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신뢰를 놓지 말고, 17개 대진료권에서 국립대병원이 각 권역별로 지역책임의료기관으로 역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본부가 지금을 공공·지역의료 골든타임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의료는 돈 주고 사는 상품이 돼서는 안 된다. 상품은 돈을 버는 지역에서만 팔게 된다. 의료는 돈이 없으면 사지 않아도 되고 파는 사람이 없어도 되는 상품이 아니다. 한국의 의료는 그런 시장에 놓여있고, 국민은 계속 죽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역과 수도권의 치료가능사망률(의료적 지식과 기술을 고려할 때 치료가 시의적절하게 이뤄졌다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사망) 격차는 상당하다.
이런 비극을 끝내기 위해서는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한다. 그 사명을 지금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이 느꼈다. 사실 어려운 파업이었다. ‘정부가 국정과제를 발표했고, 전공의도 돌아온다고 하는데 파업까지 해야 하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하지만 국정과제 세부내용 공백과 전공의가 돌아와도 지역 환자를 살리기 어려운 현실을 노동자들이 자각했고, 결심했다. 노동자들이 각오한 만큼 시민들도 응원의 목소리를 보냈으면 좋겠다. 정부도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노조와 구체적인 계획을 만들고 예산 배정의 뜻을 보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