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로운넷 = 조은결 기자
필수 의료 인력으로 병원 현장을 떠받치고 있지만, 간병노동자는 여전히 법과 제도의 보호 밖에 놓여 있다. 장시간 노동과 상시적인 산재 위험, 인권 침해가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현실이 각종 실태조사를 통해 수치로 확인되면서 간병노동을 더 이상 개인 간 계약이나 사적 돌봄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요구가 국회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간병노동자를 제도권으로 편입하고 국가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보건복지자원연구원과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22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학영·박주민·이수진·김주영·김남희 의원과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과 공동으로 '2025년 간병노동자 건강실태 조사결과 발표 및 처우개선 방안 국회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필수 의료 인력임에도 법적·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인 간병노동자의 건강환경과 노동환경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공유하고 이를 토대로 실질적인 건강권과 노동권 보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보건복지자원연구원이 2025년에 실시한 '간병노동자 건강 및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간병노동자의 평균 연령은 65.15세로, 60대 이상이 88.8%에 달했다.
여성 고령 인력 중심의 구조 속에서 이들 대부분은 '1:1 개인 간병(99.3%)'을 수행하고 있었다. 근무 형태는 '24시간 종일제(52.6%)'와 '24시간 격일제(46.3%)'가 대부분을 차지해 실질적인 휴게와 수면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상시 대기 상태의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 사고에 대한 취약성도 뚜렷했다. 간병노동자는 환자 돌봄 과정에서 상시적인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업무 중 산재 사고가 발생했을 때 치료비 등 후속 조치를 '스스로 해결했다'는 응답이 82.9%에 달했다. 응답자의 85%는 산재 사고 발생 시 병원의 지원이 불충분하다고 답해, 병원의 안전 관리와 사고 이후 지원 체계가 사실상 부재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업무 강도와 인권 침해 문제도 심각했다. 응답자의 90.7%는 중증 환자 증가로 간병 부담이 가중됐다고 느끼고 있었으며 이는 신체적·정신적 피로 증가와 환자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이 넘는 54.5%는 반말이나 모욕적인 말 등 비인격적 대우를 경험했고 성희롱·성폭력 경험도 46.4%로 조사됐다. 가해자의 93.4%는 환자나 보호자로, 간병노동자가 보호받지 못한 채 위험에 노출돼 있음을 보여준다.

간병노동자들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한 것은 국가 차원의 사회보장 확대였다. 국가 지원 욕구 항목에서 '건강검진·예방접종 등 건강관리 서비스 국가 지원(4.63점)'과 '산재보험 등 사회보장제도 적용 확대(4.61점)'가 최우선 과제로 꼽혔다.
토론자로 나선 문명순 서울대병원 희망간병분회 분회장은 현장의 절박함을 전했다. 문 분회장은 "간병사는 유령이 아니다"라며 "24시간 환자를 돌보지만 공식 간병료를 시급으로 환산하면 약 6000원에 불과해 최저임금의 절반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장·야간 수당은커녕 아파도 쉴 권리조차 없는 현실"이라고 증언했다.
전문가들은 간병노동자를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교수는 "간병노동은 중량물 이동과 감염 노출 등 명백한 고위험 노동임에도 '개인 간 계약'이라는 이유로 보호 체계에서 배제돼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독일과 프랑스 사례를 언급하며 "가정 내 고용이나 사적 간병이라도 등록제를 통해 산재보험과 사회보장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며 "한국도 병원과 중개업체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산업안전보건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간병 직종을 명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천지선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간병노동자는 병원 운영체계와 밀접하게 연동돼 사실상 병원 근로자로 기능한다"고 짚었다.
천 변호사는 "궁극적으로는 병원 근로자로 인정받아야 하지만, 당장 시급한 보호를 위해 특수형태근로종사자나 노무제공자로서라도 산재보험 적용을 즉각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적용 범위를 좁게 해석하는 관행을 개선하고, 법령 개정을 통해 입증 책임을 전환하는 등 적극적인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남우근 한국비정규센터 소장은 간병노동이 '비공식 부문'이라는 이유로 제도적 보호에서 배제돼 온 현실을 비판했다. 남 소장은 근로기준법상 '가사사용인' 적용 배제 규정의 폐지와 '노동자 추정 제도' 도입을 촉구하며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내 '간병지원인력' 자격 기준을 신설해 의료 체계로 공식 편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산재보험법상 '노무제공자' 범위에 간병인을 포함하는 입법을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측 토론자로 참석한 박종일 고용노동부 산업보건정책과 과장은 "현장의 시급한 목소리와 전문가들의 제언을 깊이 있게 경청하겠다"며 토론회 논의를 바탕으로 간병노동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건복지자원연구원은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정책 과제도 함께 제시했다. 연구원은 24시간 1인 간병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교대제 도입과 대체 인력 투입을 통해 연속 근무를 제한하고, 간병노동자의 실질적인 휴식권과 수면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병원이 실제 사용자로서 감염 예방 교육과 보호 장비 제공 등 산업안전보건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산재보험 적용 확대와 함께 근무시간, 휴게시간, 사고 책임 주체 등을 명확히 하는 간병노동자 표준계약서를 조속히 제정해 현장에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김남희·이학영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의료연대본부 등과 함께 간병노동자 처우 개선과 산재보험 적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는 문명순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 희망간병부회장, 박경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장, 최경숙 보건복지자원연구원장이 참석했다.
이들은 "병원 내 필수 인력으로 꼽히는 26만 간병노동자가 특수고용직이라는 이유로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실질적이고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자원연구원의 2022~2023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간병노동자는 대부분 여성으로 60대 이상이 56%를 차지했고 62.8%가 가구의 주 생계부양자로 파악됐다. 또 92.6%가 24시간 교대 없이 근무하고 있으며 상당수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시급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환경 탓에 근골격계 질환(55.5%), 외상(11.8%), 감염성 질환 위험(3.9%)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있고, 언어폭력(28.6%), 신체폭력(23.3%), 성희롱·성폭력(7.8%) 등 인권 침해 피해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남희 의원은 "간병노동자는 가장 취약한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지만 다치거나 감염돼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며 "존엄한 노동과 국민의 안전을 위해 산재보험 적용은 반드시 필요하다. 국회에서 제도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학영 의원도 "간병노동자의 권리 보장과 안전은 곧 환자 안전과 직결된다"며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과 입법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최경숙 원장은 정부가 간병 급여화와 처우 개선 계획을 중장기적으로 수립하고, 그 과정에서 당사자인 간병노동자와 국민 참여를 제대로 보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간병인 공급 부족 문제 역시 구조적 개선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지난 16일 이재명 대통령은 세종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간병인 구인난과 관련해 "(간병인) 노동 강도가 너무 세 구하기 어렵고 한번 간병일을 하면 24시간 일주일 내내 해야 해서 효율이 없지 않냐"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근본적으로 방향을 바꿔서 아르바이트 삼아 2시간, 4시간 근무할 수 있는 협동조합 형태를 만들면 (간병인 인력을) 싸게 공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또 "풀타임으로 일해야 하니까 300만원, 400만원 해도 (간병인을) 못 구한다는 거 아니냐"며 "수요와 공급을 많이 모으면 싸게 인력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지시했다.
다만 이 발언을 두고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22일 성명을 내 정면으로 비판하며 간병노동의 구조적 현실을 외면한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의료연대본부는 중증 환자 간병을 2~4시간 단위 노동으로 쪼개는 것은 현실성이 없고,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높은 간병비 문제를 이유로 더 열악한 간병 일자리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의료연대본부는 "간병노동자는 환자 곁을 24시간 지키지만 시급으로 환산하면 최저임금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며, 보호 장비나 산재 대응 없이 일하는 현실을 외면한 채 간병인을 고액 연봉 노동자로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간병노동의 아르바이트화와 플랫폼 도입은 불안정 노동을 확대하고 국가 책임을 민간에 떠넘길 뿐"이라며 공공의료와 공공돌봄 강화,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전면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간병을 개인의 부담으로 둘 것인지, 국가가 책임지는 필수 의료 영역으로 재편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더 이상 미뤄질 수 없는 과제로 떠오르면서 제도 밖에 방치된 간병노동을 언제까지 개인 책임으로 남겨둘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국회와 정부에 동시에 던져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