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노동자에게 산재보험 적용을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부소식
중요한 공지사항을 빠르게 확인하세요.

언론보도

간병노동자에게 산재보험 적용을

관리자 2026-10-15 조회수 2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7229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 기자명손진우
  •  
  • 입력 2026.10.15 06:30
 댓글 0
 
 

▲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시대의 변화에 따라 노동의 사회적 성격 또한 변화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돌봄노동’이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를 그려낸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며 어린 시절의 향수와 학창시절을 떠올리는 이들에게, 지금의 돌봄노동의 풍경은 바뀐 시대를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하도록 한다. 돌봄노동은 이제 개인과 가족의 몫에서, 빠르게 공공과 사회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특히 병원에서 장기 요양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간병노동자들은 필수적인 존재가 됐으며, 이제 이들의 부재를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필수적인 노동이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그에 걸맞은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하는 일은 험난하다. 특히 일하다 다치고 병들었을 때 보호망이 돼야 할 산재보험 적용 문제를 두고 벌어지는 엄격한 잣대는, 지금도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며 병들고 다치는 간병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간병노동자들은 환자 보호자와 일대일 계약을 맺는 구조 탓에 현행 노동법상 명확한 사용자가 존재하지 않는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됐고, 이에 따라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서 배제돼 왔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산재보험 울타리 안으로 포섭하기 위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결실로 ‘노무제공자’라는 개념이 새로 도입되면서 여러 특수고용 직종이 산재보험의 보호 범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노무제공자’라는 틀마저 간병노동자들에게는 또 다른 차별과 배제의 장벽으로 작동하는 모양새다.

여전히 온전한 노동자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최근 고용노동부가 내놓는 해법 역시 우려스럽다. 간병노동자를 예술인과 마찬가지로 ‘3.3% 사업소득자’로 분류해 산재보험에 ‘임의가입’시키겠다는 구상 때문이다. 실질은 종속적인 노동자임에도 ‘가짜 3.3%’라는 프리랜서의 굴레를 씌우고,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산재보험을 ‘선택 사항(임의가입)’으로 치부하는 것은 간병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향한 국가의 책임을 저버리는 일이다.

반면 우리와 유사한 간병 시스템을 운용하는 대만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대만은 직업노조를 매개로 간병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을 보장하고, 정부가 보험료의 상당 부분을 재정으로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를 조기에 정착시켰다. 한국에서 관련 법안 제정이 번번이 좌절되는 동안 대만은 정부가 주도해 간병노동자의 안전망을 넓혀온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역시 “사용자가 불분명하다”는 근시안적 잣대에서 벗어나, 대만과 같이 공공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지원하는 제도적 대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간병노동자들이 환자들을 돌보다가 아프고, 다치고, 병들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현실이다. 환자와 밀착해 24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휴식도 제공되지 않으며, 초장시간 노동을 수행하는 과정은 간병노동자를 병들게 한다. 이러한 잔인한 결과를 오롯이 ‘환자 보호자와 개인으로 계약을 맺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모르쇠하는 것은 사회적 필요를 특정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꼴이다. 이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간병노동자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형식상 계약은 환자 보호자와 맺었을지 몰라도, 간병 현장에서 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병원의 실질적인 통제와 관리·감독이다. 식사와 투약 보조, 위생 관리, 체위 변경, 환자 상태 관찰과 보고에 이르기까지 환자의 회복을 위한 병원의 핵심적 돌봄 업무를 사실상 간병노동자가 전담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비록 출발점은 보호자와의 일대일 개인 계약일지라도, 현장에서 이들은 병원의 지휘와 감독 아래 움직이는 실질적인 병원 인력이다. 그렇기에 병원과 사회가 이들의 위험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산재보험 재정을 함께 부담하는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돌봄의 완성이다. 그렇다면 병원과 사회 역시 이들의 안전을 위한 재정적 부담을 함께 나누는 것이 마땅하다. 간병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것은 단순한 혜택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돌봄의 가치를 존중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