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채권 발행...국회 '1라운드' 돌입
보건복지위 의료채권발행법 심의 개시...'경쟁력 강화' vs '의료 왜곡현상 심화'
2009년 04월 21일 (화) 11:05:59 이석영 기자
lsy@kma.org
의료산업화와 의료민영화 논쟁의 중심에 있는 의료채권 발행 허용여부가 국회의 본격 심의에 오른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위원장 변웅전)는 오는 27일 전체회의를 열고 정부가 제출한 의료채권 발행에 관한 법률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이날 상정되는 법안은 앞으로 위원회 산하 법안심사소위원회(위원장 안홍준)의 논의를 거쳐 상임위와 본회의 통과 여부가 결정된다.
법률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의료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기관을 의료법인과 민법·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법인 의료기관으로 제한했다. 개인이 개설한 의료기관이나 공공의료기관을 설립·운영하는 공공단체는 의료채권을 발행할 수 없다.
의과대학 부속병원은 비영리법인인 학교법인에 속해있고, 또한 특별법인 사립학교법에 의해서도 설립되기 때문에 채권을 발행할 수 있다.만약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 시행되면 의료법인과 사회복지법인, 민법상 법인, 학교법인, 소비자생협회법인 등이 채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지방공사 의료원, 서울대학교병원, 국립대학교병원, 국립암센터, 국민건강보험공단, 한국산재의료원, 한국보훈복지공단 등은 발행할 수 없다.
법률안은 의료채권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의 사용 용도를 ▲의료기관 개설 ▲의료장비 및 의료시설 확충 ▲의료기관 소속 의료인과 직원의 임금 ▲의료나 의학에 관한 조사·연구 등으로 제한했다. 또 채권발행 총액을 의료기관 순자산액(총자산-총부채) 합계액의 4배를 넘지못하도록 했다. 이와함께 의료채권을 발행하는 모든 의료기관은 의료법에 따른 회계기준을 지키도록 규정했다. 현행 의료법은 100병상 이상인 종합병원만 회계기준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해외환자유치·일자리 창출 위해 꼭 필요
현재 비영리법인이 개설한 의료기관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은 병원 운영자의 자금과 의료기관 운영을 통해 벌어들이는 이익잉여금, 그리고 은행 등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입하는 방법이 전부다. 문제는 이 중 어느 방법으로도 대규모 자금을 안정적으로 끌어모으기 어렵다는 점. 특히 대다수 의료기관의 자금줄인 금융기관 차입은 요즘처럼 국내외 경제상황이 어려울 때는 병원 도산으로 이어지는 매우 위험한 수단이다.
결국 병원 입장에서는 인력과 시설을 확충, 환자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 제공을 위한 가장 유리한 자금유입 통로가 채권발행인 것이다. 정부로서는 병원이 외부 자본을 통해 규모를 확장하고,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해외환자 유치를 통한 국부 창출과 함께 특히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10억원당 고용창출 효과를 비교할 때 의료서비스는 19.5명으로 제조업 12.1명에 비해 크게 높다는 사실은 정부로 하여금 의료채권 허용을 서두르게 하는 이유다.
"돈 되는 진료만 할 것...의료왜곡 심화"
최근 보건의료노조는 의료채권발행에 관한 법률안을 '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의료기관 등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과 '제주특별자치도의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조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과 함께 '의료민영화 3대 악법'으로 규정하고 국회 통과 저지를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 반대론자들은 채권발행을 허용하면 의료기관이 수익성 위주로 운영돼 의료왜곡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돈되는 진료'만 골라서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 결과 비급여 진료를 선호하고 보험급여 진료는 회피해 의료인력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고, 의료기관이 보다 많은 환자 유치를 위해 도시지역에 집중돼 지역간 의료불균형이 가속화 될 것이라는 우려다. 채권발행이 허용되지 않는 공공병원의 경쟁력 악화도 이들의 걱정거리다.
의료기관 대형화 부추겨 동네의원 몰락
의료채권 반대 입장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1차 의료기관의 몰락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채권발행 허용을 놓고 의료계 내부에서도 찬반 입장이 갈리고 있는 부분이다. 의료채권 발행을 허용하더라도 실제로는 신용도가 높은 병원만 발행할 수 있게 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미 대형화·고급화 된 병원들 위주로 채권이 발행돼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소병원과 1차의료기관은 몰락할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정부는 채권발행 주체 가운데 개인 의료기관을 배제한 이유에 대해 의료채권이 남발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채권이 무분별하게 발행되는 경우 증권시장에 혼란을 야기하고 의료채권에 대한 인식이 낮아져 전반적인 조달금리가 인상될 우려가 있다는 것. 그러나 이는 대형병원의 입장일 뿐, 의료왜곡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한 대응논리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영리의료법인과 맞물려 '대격전' 예고
의료채권 발행은 현재 가장 뜨거운 논란에 싸여 있는 영리의료법인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부는 영리의료법인제도를 도입해 현재 비영리법인인 의료기관을 영리법인화, 즉 주식회사 형태로 설립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여러가지 부작용을 고려해 기존의 비영리법인을 영리법인으로 전환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하되 기존 비영리법인 의료기관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그들에게도 자금을 유입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할 필요가 있는데,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의료채권 발행을 허용하는 방법인 것이다.
이신호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전문위원은 지난달 복지부와 한국개발연구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영리의료법인 도입으로 신규 병상공급만 유도된다면 의료자원의 효율적 운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기존 의료법인 병원의 재투자 능력 및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의료채권제도 도입, MSO(병원경영지원회사)를 통한 경영효율성 증대, 부대사업확대, M&A 허용, 자비병상 허용 등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리의료법인 도입을 반대하는 세력이 의료채권제도를 격렬히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발언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난 2006년 국내 병원장 및 보건의료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의료채권제도 도입에 대해 병원장은 49%, 전문가는 34%가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채권제도를 둘러싼 현재의 형국은 정부·대형병원과 중소병원·1차의료기관이 입장차를 보이는 가운데 의료산업화 자체를 반대하는 보건노조 등 사회시민단체가 3각 구도를 형성, 팽팽히 맞서고 있는 모습이다.
사회적 격론에 휩싸여 있는 의료민영화 논란의 첫 단추인 의료채권제도에 대해 국회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